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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론/Daily

1. 시작과 '나의 의미'

TTS 기능

(TTS : Text-to Speech, 음성합성 시스템)

이번 글에는 TTS를 이용해 블로그 본문을 들을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유사 오디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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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첫 글

 

블로그 첫 글입니다. 

처음에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나만의 블로그를 꾸미는 건 10대 때부터 줄곧 버킷리스트에 있어왔던 꿈 중 하나입니다.

몇 개월 전부터도 계속 "글 써야지 글 써야지"라고 생각만 했지만 막상 글이든 그림이든 어느 하나도 올리지 못했어요.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수많은 "시작"하는 글들이 쓰였다가 지워지거나 사라졌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저를 마주하는 것도 싫었고, 어차피 뭘 해봤자 외면받을 텐데,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또다시 들게 된다는 건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즐거우려고 하는 블로그인데 여기에서조차 또다시 가상의 평가단을 세워서 "내가 하는 것은 항상 가치 있고 의미 있어야 해. 내가 보기에도 예뻐 보이고 완벽해야 해."라는 강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글 쓰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림이든 공부든 매사에 다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까 재미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지. 

 

 


좋아해서 오히려 하기가 싫다면

 

어쩌면 애정이 있기 때문에 기대치도 높은 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쓸 땐 칼럼을 쓰는 것처럼 잘 쓰고 싶고, 그림을 그리면 동경하는 일러스트 작가님들처럼 잘 그리고 싶고, 공부를 하면 막히는 개념이나 문제 없이 술술 잘 이해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솔직히 저렇진 않습니다. 글을 쓸 땐 머릿속에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문장이 쭉 나오지가 않고, 초고를 쓰더라도 한 번은 꼭 읽어 봐야 합니다. 여러 분야들 중 그나마 가장 좋아하는 전공 공부도, 처음 공부할 땐 개념이 한 번에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2n년 간 돌아본 저는 초기 속도가 굉ㅡㅡㅡ장히 느린 사람입니다. 백지 상태에서 처음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거나, 몇 번 해 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땐 시간이 좀 걸립니다. 대신 제대로 배운 건 장기기억이 오래 가고 응용력은 꽤 좋은 편이라서 솔직히 대기만성(?) 기믹 하나로 살고 있어요. 

처음 배울 때 바로바로 못 따라가는데
→ 목표치는 높아서 좌절하고
→ 목표 퀄리티에 부합하도록 그림이든 글이든 자체 수정 및 피드백을 반복하면
→ 90%정도는 자기만족이 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림
→ 자괴감이 듬
→ 다음에 할 때도 "지금 했던 것 만큼의 퀄리티를 내야 할 것 같으니"
→ 결국 안 하게 되고;;;

어떤 책에서는 "일의 결과가 아닌 진행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하는데, 과정 자체가 즐겁지 않으니 "좋아는 하는데 즐겁지가 않은" 모순적인 상황에 계속 놓였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하는 것도 회피를 거듭하다 간신히 시작하는데, 진행하는 과정 자체도 스트레스고,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는 스스로에게도 그리 만족스럽지가 못합니다. 설령 저 혼자 만족스럽더라도, 나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가치 있게 보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도, 내가 하는 모든 일들도 전부 의미도 가치도 없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너무 우울한 얘기라 지금은 안하겠습니다.)

 

 


삶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Dum vita est, spes est
삶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그러다가 제가 즐겨 하는 RPG에서 보스를 더 편하게 잡기 위해 "프리드의 가호"라는 스킬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프리드의 가호"는 25~30초 주기로 1번씩 총 6번을 써서 6중첩을 만들면 30초 동안 캐릭터에게 무적버프를 주는 스킬입니다. 설정상 이 가호를 주는 '프리드'라는 캐릭터가 천재 대마법사라 그런지, 스킬 중첩을 쌓을 때마다 프리드의 친구 또는 후계자에게 어울리는 간지나는 라틴어 구절을 하나씩 띄워줍니다. 

 

"Dum vita est, spes est"는 이 중 4번째 구절로, 해석하면 "삶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라는 뜻이 됩니다.

사실 제 게임 캐릭터에게 대응하는 구절 "Vires acquirit eundo"(해석 : "나아감으로서 힘을 얻는다")도 좋아하지만, 아직 저는 "나아가자!!"라고 외칠 만한(?) 텐션이 부족하다 보니 앞 문장이 더 마음에 와닿았어요.

 

 

'나의 의미'가 있기에 희망이 있다. 

 

제 상황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솔직히 지금 당장은 절망적인 것들밖엔 없어 보입니다. 어찌됐든 현재 전공 지식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며, "해 보고 싶은 것들"도 다 찍먹만 한 정도라 '진로를 전공 말고 다른 쪽으로 해 볼까?'라고 말할 만한 실력이 못 됩니다. 몇몇 인간관계도 돌아볼수록 서툴고 부족한 모습들과 후회만 가득합니다. 부모님도 온전한 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 이어집니다. 지금 내가 너무 불만족스러웠더라도 푹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아침에 새로운 시간이 주어집니다.

어제는 "겨우 이 정도"밖에 해내지 못했고, 나만 너무 억울한 것 같고, 아무리 읽어도 대체 뭔 소리인지 이해를 못 했더라도, 오늘 다시 돌아보았을 때 불만족스러웠던 어제의 나보다 0.1만큼이라도 더 얻는 게 있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더 잘 하고, 나와 타인의 마음을 더 잘 공감할 수 있고, 드디어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다'라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장 그렇지 않아도, 오히려 어제와 다름이 없거나 약간 더 떨어진 것 같더라도 새로운 지식이든 경험이든 무언가를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요?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순간의 성과와 상관없이 이런 '나만의 의미', '나의 의미'들을 찾아가고 쌓아갈 수 있으니 "삶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이 말은 제가 시험을 앞두고 극도의 불안감을 털어놓았을 때 소중한 분께서 해주었던 말입니다. 

"ㅇㅇ님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 분께 굉장히 미안해서 직접 말씀드리진 못했지만, 사실 적어도 1년 내외로 준비해야 하는 시험을 기본지식이 거의 날아간 채로 단기간에 준비하려니... 모의고사보다는 나았지만 목표 성적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때처럼 난감하거나 불안한 상황일 때, 또는 그냥 마음이 너무 불안할 때 그 분이 제게 해주었던 말을 늘 되새기곤 합니다. 현재의 내가 부족해 보여도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생기고, 넓게 보면 인생에서 작은 의미라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대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학기의 학점을 4점대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과, 블로그에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이 말 덕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미안하다고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본가에 내려가는데 저희 부모님과 진로 관련 갈등이 있는 상태라 원만히 잘 지나갈지 모르겠어요. 그냥 본가 가는 것 자체가 솔직히 너무 부담되네요;;;;

대학원까지는 다니고 싶은데 연구실 정하는 것부터 생활비와 학비 마련 방법을 최대한 빠르게 찾아야 하다 보니 조금은 막막합니다. 

그래도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들, 바꿀 수 있는 것들, 연락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며 '나의 의미'들을 찾아가려 합니다. 

 

 

이것저것 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